봉은사는 서울의 중심지인 강남구 삼성동에 자리 잡은 1,200여 년 역사의 천년고찰 입니다.
신라 원성왕 10년(794년) 연회국사가 창건한 봉은사는 억불숭유로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에 불교의 명맥을 잇기 위해 애쓰신 보우스님의 원력으로 불교 중흥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현재 코엑스 자리인 승과평에서 스님을 선발하는 승과고시를 실시해 한국불교의
선맥을 이은 서산, 사명대사 등의 걸출한 스승들을 배출하였으며 조선 후기에는
영기스님께서 판전을 세우고 화엄경 81권을 판각해 판전에 봉안하였습니다.
현재 판전의 현판 글씨는, 말년에 봉은사에 머물며 추사체를 완성시킨 김정희의
절필(絶筆)입니다.
오늘날 봉은사는 수행 중심의 사찰 운영으로 새로운 한국불교의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템플스테이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국내외적으로
양질의 한국불교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도심
대찰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봉은사 청동 은입사 향완에는 103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명문을 통하여 고려 28대 충혜왕 5년인 1344년에 향로를 만드는 장인인 김경과 오여스님, 진오스님, 계호스님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알 수가 있다. 향로는 사찰에서 마음의 번뇌를 말끔하게 씻어주고 부처님의 향기로운 가르침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닌 향을 피우는데 사용하는 공양구다. 북한산 중흥사에 있던 이 향로는 조선 명종 때에 봉은사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명종시대는 불교를 탄압했던 조선이 건국된 지 150여년이 지난 시기이다. 명종 때는 문정왕후가 불교를 독실하게 믿었기 때문에 불교의 교세가 일어났다. 문정왕후는 보우대사를 신임하여 봉은사 주지로 삼았다. 그리고 1550년에 선·교 양종을 부활시키고 이듬해에는 승과를 설치하였다. 불교중흥의 본산이었던 봉은사에 향로를 옮긴 것은 불교탄압에서 벗어나 봉은사를 중심으로 부처님 가르침의 향기가 전국에 퍼져 나가기를 바란 보우대사와 봉은사 사부대중의 간절한 발원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발원의 원력으로 봉은사는 지금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대표하는 사찰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향로는 외형에서 각부가 좋은 비례를 보일 뿐만 아니라 표면에 장식된 여러 가지 무늬가 아름다우며, 은사의 상감도 매우 세련된 방법으로 베풀어졌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전시중이다.
봉은사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이 3월 12일 보물 제1819호로 지정이 되었다. 조선 후기 효종 2년(1651년), 조선시대 최고의 조각승인 승일(勝一)스님이 봉은사에 도착하였다. 승일스님 앞에 보인 봉은사는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어 참담하였고, 스님을 비롯한 10여명의 신도들은 기도의 원력으로 전소되어 사라진 석가모니 부처님, 아미타부처님, 약사여래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셨다. 이어, 1765년의 개금발원문 (改金發願文)을 통해 1689년 무렵 화재가 발생하여 본존 석가여래상을 새로 조성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삼불좌상 모두 조각적으로 우수하고, 발원문을 갖추고 있어 17세기 중후반의 불교조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성보로 평가된다. 봉은사 대웅전의 세분 부처님은 고통 속에 헤매고 있는 모든 중생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고 소원을 들어주는 희망의 부처님이며, 대한민국의 국가문화유산과 성보로 세세생생 이어질 것이다.